사랑방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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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시간 2019-01-29 14:26:29 조회수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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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전집 발간사]


살며 사랑하며, 노동자의 꿈을 노래한 시인

 

여기 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푸른 작업복 차림으로 투박한 작업화의 끈을 매고 있는 중입니다. 끈을 다 매고 나면 이제 곧 고된 노동이 시작될 겁니다. 그 노동의 끝에서 무엇이 피어날까요? 성효숙 화백이 그린 <작업화를 신는 노동자>를 보며 조영관 시인을 떠올립니다. 그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조영관 시인, 그가 걸어간 길을 더듬는 일이 아득합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유명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스스로를 공장 노동자로 하방(下放)시킨 사람, 노조위원장을 하다 구사대에게 끌려가 갈비뼈가 부러졌던 사람,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꿈을 간직하고 분투했던 사람, 무엇보다 시인이면서 소설 쓰기에 매달렸던 사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질고 아름다운 사람, 조영관!

 

그가 떠난 지 십 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끼는 후배이자 동지였던 박영근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그의 자취방에서 이틀 밤을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고, 제발 죽지 말라며 억지로 박영근 시인에게 밥을 떠먹여 주던 조영관 시인. 박영근 시인이 허망하게 가고 난 뒤 채 1년이 못 되어 그 뒤를 따라간, 아 조영관 시인! 그 이름을 부르는 일이 목 메인 슬픔이 될 줄 누군들 짐작이나 했겠는지요. 그가 꿈꾸던 ‘햇살공동체’를 이제 막 만들어 놓았는데, 그 찬연한 햇살이 벌써 십 년째 고인의 무덤 위로 비껴 내리고 있습니다.

 

생전에 그의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갖지 못했습니다. 타계한 뒤에야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라는 제목을 단 유고시집을 그의 무덤에 바쳤을 뿐입니다. 그가 남긴 다른 모든 시와 소설들은 생전에 그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갈무리해둔 채로 이 세상 모든 당신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홀로 곳간에 쟁여두었던 작품들을 묶어 세상에 내놓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조영관이라는 이름과 함께 조영관이라는 한 인간의 영혼이 그러안고 지펴온 문학의 온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그는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밥 벌어먹자고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폼 잡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내 쓰는 글이 땀을 흘리는 것보다

정녕 부끄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시가 황소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믿는다.

 

위의 고백처럼 조영관 시인은 무엇보다 폼을 잡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과 문학 앞에 누구보다 겸손했던 조영관 시인은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선한 웃음과 함께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흥이 오르면 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했지만, 가슴 속에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뜨거움이 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부분 긴 호흡을 가지고 있고, 시로 다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쌓여 소설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시인답게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그는 생전에 우리말과 각 지역의 사투리들을 모아서 파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공부한 말들을 시와 소설 안에 적절하면서도 풍부하게 녹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집이 나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학 시절의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 발간 비용까지 모아준 서울시립대 동문들과 추모사업회 일꾼들, 그리고 애틋하게 형을 기리는 고인의 아우 조영선 변호사를 비롯한 유가족들, 조영관 시인을 좋아하고 따르던 동료 작가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기에 두 권으로 된 전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시 책임 편집은 박일환, 산문 책임 편집은 송경동과 박수정, 소설 책임 편집은 하명희 작가가 각각 맡아 주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조영관 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수어 세상에 뿌려놓고 간 햇살 때문임을 우리 모두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끝으로 전집 발간을 흔쾌히 받아준 도서출판 <삶창>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7년 2월

노동자 시인 조영관 전집 발간위원회

 

등록일 :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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